1. 무명의 에바브로디도
이번에 빌립보서를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사람은 무명에 가까운 에바브로디도입니다.
그는 빌립보의 소식과 재정 후원금을 가지고 바울에게 전해주었던 사람이며(빌 4:18), 바울과 함께 수고하고 군사 되고 바울팀의 쓸 것을 도운 사람입니다(2:25).
그러나 그렇게 그리스도의 일을 돕다가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빌립보 교회를 간절히 그리워 하였고, 그런 중에도 자신의 병든 소식을 듣게 된 빌립보 교회를 염려할 만큼 이타적이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2:26).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회복되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2:27).
바울팀과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빌립보 교회가 서로 함께 동역함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그러다가 에바브로디도가 병을 얻게 되어 가슴이 아프고, 후에 그가 병에서 낫게 되어 저 또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의 일을 하든, 하나님 일을 하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온 것이고, 모든 것을 주께 하듯하라는 것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가르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엡 5:22; 6:7; 골 3:18, 23).
지금 우리가 자신을 우겨 싸고 있는 어떤 고난가운데에 있을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지름길이며, 우리가 주께로부터 허락된 고난을 순전히 넘어갈 수 있는 근거이자 태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욥의 고난에서, 하박국이 외치는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에서, 그리고 시편(37편)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런 분들을 응원하고 위로하고 기도해 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오늘날 2장 5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더 중요한 메시지는 6절 이하에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지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즉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라는 말입니다.
듣기 불편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종한 결과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셨느니라”(빌 2:9-11).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밀알과 같은 존재인 우리가 자기 잘난 맛에 살면 박수는 받을 지 몰라도 순전한 열매는 없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 법칙입니다.
빌립보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유럽을 변화시킨 것은 근거는 바울팀의 능력과 잘남이 아니라 그들의 십자가 짊어짐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목숨을 바쳤던 바울에게 찾아온 현실은 고난과 감옥이었으며, 심지어 감옥에 갇힌 것에 대한 일부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난에 대한 해석을 예수의 고난에 비유하며 변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강권합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기뻐하라!
그는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누리게 될 행복을 이 땅에서 맛보았고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간절히 소망했기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강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주목과 박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높여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높여 줄 수 없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천국 복음, 천국 시민권, 그리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그래서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는 저희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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